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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공 모으며 당구대 10바퀴 돌면 2만점"
당구명인 양귀문 옹

세계 챔프 이상천을 수제자로 길러낸 양귀문옹은 당구가 곧 인생이었다. 대학시절이던 1950년대. 늦은 밤 담을 넘으며 당구에 심취하다 어느새 1000점을 돌파하며 국내 최고로 성장한 그는 1971년 한/일 당구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비록 일본에 1. 2위를 내주고 3위에 머물렀지만 일본 당구가 한국을 수십년 앞서던 시기여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때 그를 제자로 키우겠다며 일본으로 가자고 제의한 사람은 바로 일본 선수단 단장 다카키 쇼지. 사실 그는 윤춘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었다.

일본 최고의 당구인이었지만 한국인을 제자로 맞겠다는 열망에 그때까지 일본인의 숱한 제의를 물리쳤다. 윤씨는 재능과 의지를 겸비한 한국인 청년 양귀문을 단박에 제자로 낙점했다.

양귀문옹이 일본에서 윤씨로부터 당구를 전수받은 기간은 단 6개월. 그러나 귀국할 무렵 청년 양귀문의 당구실력은 이미 2만점이었다. 스승은 그에게 수시로 "너와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하곤 했다. 귀국한 뒤스승의 가르침대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당구대를 10바퀴를 돌며 2만점씩 치는 훈련을 했다. 적생 공 두 개를 흩뜨리지 않고 당구대 벽을 따라 10바퀴를 도는 데는 약 150분이 걸린다.

양귀문은 곧 일본의 고수들을 꺾고 아시아 정상에 오른 뒤 이내 세계의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그는 당구에 대한 세간의 인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서 당구가 건달들의 노름판처럼 인식돼 가슴이 아픕니다. 실상 당구는 깍듯한 예의와 정정당당한 규칙이 기본인 신사 스포츠거든요. 제대로 배워 즐기면 매사에 사려가 깊어져 대인관계나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양귀문옹은 요즘 서울 서초구의 한국당구아카데미(www.kbac.co.kr)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한국당구아카데미 손형복 원장(48)은 "양귀문 명인과 의기투합해 선수를 양성하는 것은 물론 배우는 스포츠로서의 저변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덕분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식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구 시범을 부탁하자 양옹은 이제 늙어서 힘이 없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의 기술이 빚어내는 당구공의 움직임은 꼭 누가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듯 살아서 꿈틀거렸다.

최대환기자 cdh70@sportsseoul.com
2002년 12월 4일 수요일